[장인정신] 도자공예의 정신에 대하여 !

장 인 정 신 - 공예의 정신에 대하여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송대의 자기에는 그 어느것도 제작자의 서명이 들어 있지 않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하여도 도공은 결코 그의 작품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은 당시에는 작품에서 서명을 하는 풍습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설명은 더 간단할지도 모른다.

송대의 공예가들은 자의식이 있는 예술가도, 학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일상용품을 만들어 내는 단순한 직인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필시 매우 가난하여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들은 창조적인 생각이 들때만 일을 할 수 있는 특수층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도공이나 한국의 도공들은 송대의 자기나 고려자기 같은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더우기 이런 것들은 분명 손쉽게 만들어진 것이며 또한 소수의 도공들만이 만들어 냈던 것도 아니었다. 사실 이같은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직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상당한 수준의 예술가조차도, 명상의 솜씨가 필수적임을, 그리고 비범한 재능을 지닌 소수의 예술가만이 성공을 거둘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송대의 자기나 고려의 자기들은 그런 유명하고 독자적인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수수께끼가 설명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시대정신, 즉 불교와의 관련지어 생각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송대의 자기의 아름다운은 쉬운길--은총에 의존하는길-을 따름으로써 목적을 달성한 좋은 예이 다. 이러한 작품의 질은 도공의 개인적인 능력에 있었다기 보다 그들을 보호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공적 에 기여했던, 그들이 살았던 세계에 있었다고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풍부한 자원과 오랜 전통, 반복적인 작업을 통한 대량생산 , 일상 생활을 위한 제작 등 이 모든 것이 도공을 돕는 역할을 했다. 평범한 재능을 지닌 장인이 이런 힘들에 저항하여 스스로의 힘에만 의지해야 했다면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길을 잃게 되거나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보다 위대한 힘에 겸손하게 스스로를 맡겨야 한다.
또 다른 주목할만힌 사실은 송대의 자기나 한국의 자기가 제작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 작품 자체는 두드러져 보이는 반면 개성은 숨어있다. 그 세계에서는 물건이라는 매체를 통해 개성을 드러 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반대로 인간이라는 매체를 통해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만일 인간의 측면에서도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가 위대한 외적인 힘에 스스로를 맡겨버린 순종의 미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분청사기는 백 분장토를 듬뿍 묻힌, 거칠고도 큰 붓으로 기면(器面)을 죽죽 훑어 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수법이 극히 간단하여 도공들은 거의 무심한 상태에서 작업을 했다. 이렇게 하면 분장토가 기면에 더 잘 입혀지기 때문에 그들은 또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일본에서는 흔히 다기로 사용되어 일본인들이 의식적으로 이를 모방하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조선의 직인들 은 어떤 특별한 효과를 노려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훌륭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직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던 이러한 태도는 바로 선승들이 말하는 '편상심'이다-한 때 이것은 무엇보다도 값싼 기물이었다. 여기에 바로 평상심이 있다. 직인들이 평온한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데 반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일본 직인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미를 추구하는 특별한 마음의 산물이며 따라서 본디 무난(無難)한 것일 수 없다.

결과적으로 조선의 것이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아릅답다.(야나기 무네요시-'陶瓷器의 美') 선가(보데달마-선종)의 용어로 표현해 본다면 조선의 분청사기는 미와 추의 개념 이전에 만들어진 것인 반면 일본의 모방품은 이 두가지에 대한 분별심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후자에는 이원적인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에 결코 전자를 능가할 수 없다. 고려의 자기들이 매우 훌륭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붓놀림과 형태의 구성이 모두 뛰어나 추하다거나 싫증을 불러일으키는 그 어떤 형태도 없음은 알수 있듯이 사용된 재료의 성질을 완전히 이해하고 제작된 대담한 구성과 끝없는 반복작업으로 훈련된 붓질은 이러한 반복작업이 기적처럼 보이는 재빠른 손길과 놀라운 솜씨를 낳게 하였다.
거기에는 망설임 같은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을 잊어버린 상태에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일을 했다.
오늘날에는 두렵게 생각될지도 모르는 이 단조로운 반복작업과 도공들에게 숙명처럼 강요된 힘든 일의 대가로 물건에는 아름다움이 깃들게 되었다. 묵묵히 전통을 따름으로써 아름다움이 보장되었던 곳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세대에 걸친 경험과 지혜의 축적인 "전통"을 불교에서는 "은력(恩力)"-어떤 경우에나 개인을 능가하는 하나의 총체적인 힘-이라 한다.
배우지 못한 직인들은 개인으로써는 보잘 것 없으며 무력할지도 모르지만 이 전통의 은력이 뒷받침되면 아주 손쉽게 훌륭한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직인이 만들어 내는 물건에서 전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반해 근대 산업화되면서 인간의 마음과 손으로 제작되어지던 수공 작업의 전통은 점차 기계화되었다. 거기에 또 공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물건의 전통적인 가치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유행에 밀려다닌다. 오늘날 싼값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 기계생산은 더욱 필요하게 되고 더구나 인구 증가는 대량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수공작업은 한정적이다보니 고가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면 수공작업은 낡은 생산방식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근대적인 감각은 기계미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수공작업을 필요성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기계는 손으로 할 수 없는 상당한 힘을 지니고는 있으나 손에도 한계가 있듯이 기계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으면 않된다.
기계생산의 특성으로 보면 첫째로 획일적이며 단조롭기에 물건으로부터 싫증을 느끼게 되는 것은 피할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는 자연스러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영리주의와 결부되어있어 이익을위해 물건의 질이나 아름다움이 희생되어, 조금이라도 이익을 증대하기 위해 싸구려 재료를 사용한다거나 제작 시간을 단축시킴으로서 생산의 도덕성이 문란해지게 된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노동의 즐거움이 없고 또한 작업의 창조성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물건에 인간성이 결여되게 된다. 네번째로는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훌륭한 의장가(意匠家-디자이너)가 필요하지만 그러한 의장가는 여간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있다 하여도 자본가의 이해가 없을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물품의 품질 저하가 야기되는 것이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볼 만한 것도 있겠으나 대체로 지금까지는 실패한 점이 많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다시 수공작업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때 인간의 필수품이 경제적으로는 기계제품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비해 수공작업에 의한 물건은 고가라 하여도 성실하게 만들어진 한에는 내구성이나 이용도가 늘어 나 오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비싼 것이 아님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싸고 조악스러운 것이 낭비가 더 심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기업은 정책적으로 오래 사용하지 못할 물건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다. 그것은 대량소비를 위해서 인데 상업적인 방법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제작자나 사용자 모두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인간의 손만큼 정묘한 기계는 없을 것이다. 힘이나 속도 등의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겠으나 그 창조성이나 순응성, 자유성이나 다양성 같은 것은 기계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측면이나 과학적인 입장에서도 수공작업을 배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고정적이며 획일적인 것보다는 창조적이며 자유로운 물건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의 출현은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룰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룰 피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능동적으로 이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방법은 수공과 기계가 협력하고 보좌하는 것과 물품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결국 어느 방법으로 나아가든 옳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필히 생산의 도덕성이 고양되어야 할 것이며 공예문제는 다만 기술문제나 경제문제가 아니고 역시 정신적인 문제가 그 근본을 이루고 있다.

글: 이재삼 (제3도예 대표/ 도예가) "도자예술의 새로운 시각" 에서 참조글